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손을 자세히 기억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 손등의 주름이 얼마나 깊었는지, 손가락 마디는 어떤 모양이었는지, 마지막으로 손을 잡았을 때 어떤 온기가 느껴졌는지 묻는 순간 기억은 잠시 머뭇거린다.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충분히 바라보지 못했던 삶이 그 손에 남아 있다.
디지털 임파스토 작가 백종찬의 《신의 손》은 그 익숙하고도 낯선 자리를 향한다. 부모님과 조부모의 손을 통해 사랑과 희생, 노동과 돌봄의 시간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성화 《기쁨의 만찬》에서는 예수님의 식탁을 통해 함께하는 관계를 바라본다. 손과 식탁이라는 서로 다른 장면은 백종찬의 작품 세계에서 사랑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생각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얼굴 너머의 생애, 손에 남은 시간을 바라보다
《신의 손》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대상은 우리 곁의 아버지와 어머니, 조부모의 손이다. 가족의 생계를 이어 가고, 누군가의 끼니를 챙기고, 넘어지는 아이를 일으켜 세웠던 손이다. 작품은 그 손을 통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이 프로젝트의 출발에는 칭찬사역에서 이어진 마음이 있다.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뒤늦게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 계실 때 칭찬과 감사, 사랑을 표현하도록 돕자는 취지다. 그림으로 남기는 일과 마음을 전하는 일이 하나의 흐름 안에 놓인다.
손을 생애의 기록으로 바라보면 초상의 의미도 넓어진다. 얼굴에서는 표정과 인상을 읽지만, 손에서는 반복해 온 행동을 떠올리게 된다. 무엇을 만들고 누구를 돌보았는지, 어떤 무게를 견디고 어떤 손을 붙들었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백종찬이 다루는 손은 신체의 일부이면서 삶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다.
주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나이 듦의 흔적을 넘어, 오랜 시간 축적된 움직임을 상상하게 한다. 일하고 씻고 차리고 보살피는 평범한 행동이 수십 년 동안 이어졌을 때, 그 삶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 것인지 묻는다. 《신의 손》의 주제는 그 질문과 맞닿아 있다.
감싸고, 받치고, 맞잡는 세 가지 관계
《신의 손》 시리즈는 감싸고, 받치고, 맞잡는 손의 관계를 다룬다. 세 동작은 닮아 있지만 서로 다른 감상의 길을 연다. 감싸는 손에서는 보호를, 받치는 손에서는 지탱하는 수고를, 맞잡은 손에서는 서로에게 응답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받치는 손은 평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돌봄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곁을 지킨 사람의 수고는 특별한 사건보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 남는 경우가 많다. 작품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손의 자세는 가족 안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맞잡는 관계에서는 돌봄의 방향이 달라질 가능성도 보인다.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의지했던 사람이 훗날 부모의 손을 붙드는 장면이다. 한때 보호받았던 사람이 이제는 누군가를 받쳐 주는 자리로 옮겨 간다. 이는 작품을 통해 떠올릴 수 있는 해석이며, 관람자의 경험에 따라 다른 기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림이 특정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서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아버지를, 누군가는 어머니나 조부모를 생각할 것이다. 오랜 세월 곁을 지킨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다. 손이라는 소재는 각자의 기억이 들어올 자리를 남긴다.

《기쁨의 만찬》, 함께하는 자리에서 읽는 신앙
백종찬의 창작에서 성화는 주요한 축이다. 《기쁨의 만찬》은 예수님의 식탁이라는 장면을 통해 그의 성화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읽는 실마리는 제목에 담긴 ‘기쁨’과 함께하는 식탁에 있다.
식탁은 음식을 먹는 장소인 동시에 관계가 드러나는 자리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자리를 내어 주고, 같은 시간을 나누는 행동이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바라보면 성화 속 이야기는 자신의 삶에 던지는 질문으로 가까워진다. 나는 누구와 함께하고 있으며, 누구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기쁨’이라는 제목 역시 하나의 감정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함께하는 즐거움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이나 다시 마주 앉고 싶은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다. 신앙 안에서 바라는 만남과 관계를 되새길 수도 있다. 작품명은 감상의 문을 열고, 그 안을 채우는 기억은 보는 사람에게 남겨진다.
《신의 손》과 《기쁨의 만찬》을 함께 읽으면 돌봄과 동행이라는 연결점이 드러난다. 한쪽에서는 손을 통해 누군가를 지탱해 온 시간을 바라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식탁을 통해 함께 머무는 관계를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말을 손의 동작과 함께하는 자리로 구체화해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의 질감으로 남기는 삶의 이야기
백종찬은 디지털 임파스토를 표현 방식으로 삼는다. 디지털 화면에서 두터운 붓질을 연상시키는 질감과 빛의 효과를 다루는 작업이다. 물감을 실제로 쌓은 표면과 디지털로 구현한 시각적 질감은 제작 방식에서 구분되지만,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그 표현이 어떤 주제와 만나는지가 함께 중요해진다.
《신의 손》에서는 손에 담긴 시간과 돌봄의 의미가, 성화에서는 신앙과 관계의 이야기가 감상의 중심에 놓인다. 표현의 특징을 살펴보는 일은 그 이야기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르는 과정이 된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에서 출발한 관심이 무엇을 바라보게 하는지로 이어지는 것이다.
《신의 손》 프로젝트가 제시하는 기록·칭찬·예술이라는 세 방향도 이와 연결된다. 사진과 이야기로 삶을 남기고, 살아 있는 동안 마음을 표현하며, 그 기억을 그림으로 이어 가는 구상이다.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뿐 아니라 작품 이후의 일상까지 생각하게 한다.
그 이후의 행동은 작고 구체적일 수 있다. 부모님의 손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그 손으로 해 온 일을 여쭙거나, 오래 미뤄 둔 감사의 말을 전하는 일이다. 그림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사람을 다시 바라볼 계기가 될 수는 있다.
부모님의 손과 예수님의 식탁에서 출발한 백종찬의 그림은 결국 곁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를 지탱해 온 사람을 얼마나 자세히 바라보았는지, 함께하는 이들에게 어떤 마음을 전했는지 묻는다.
‘손을 그리다. 인생을 기록하다. 사랑을 남기다.’ 《신의 손》을 설명하는 이 문장은 그림 이후에도 남는다. 작품 앞에서 떠올린 한 사람에게, 아직 전할 수 있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백종찬 작가 소개
백종찬은 ‘생각의 붓으로 글을 쓰고, 마음의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디지털 임파스토 작가다. 부모님과 조부모의 손에 담긴 삶과 사랑을 기록하는 《신의 손》 프로젝트와 예수님의 이야기를 담은 성화를 중심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