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윤리 가이드라인, 노동자 집단 권리를 빠뜨리다

ILO 보고서가 드러낸 AI 윤리의 사각지대

채용·평가 알고리즘이 일터 권리를 바꾸는 방식

개인 보호를 넘어 집단적 권리로 가야 할 이유

ILO 보고서가 드러낸 AI 윤리의 사각지대

 

2026년 10월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보고서는 인공지능(AI) 윤리 논의의 공백을 숫자로 드러냈다. 보고서가 검토한 245개 AI 윤리 가이드라인 가운데 60% 이상은 업무 맥락에서 AI를 다뤘지만, ILO나 국제 노동 기준을 언급한 비율은 20% 미만에 그쳤다.

 

바꿔 말하면 업무와 관련된 AI 윤리 문서의 80% 이상이 국제 노동 기준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수치는 기술 설계의 문제가 아니라, 매일의 일자리 규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둘러싼 제도적 공백을 드러낸다. AI가 채용 서류를 걸러내고 성과 평가 자료를 정리하며 해고 판단에 참고 정보를 제공하는 순간, 윤리는 추상적 원칙에서 월급과 승진, 고용 안정의 문제로 이동한다.

 

그런데 현재 상당수 AI 윤리 프레임워크는 정의, 선의, 무해성처럼 개인 단위의 원칙을 중심에 둔다. 이 접근은 차별과 개인정보 침해를 다루는 데 필요하지만, 일터에서 노동자가 집단으로 협상하고 절차를 요구하는 권리까지 포괄하지 못한다. ILO 보고서가 지적한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보고서는 ILO 제네바 사무소의 사회 법률 연구원이자 윤리 담당관인 Jordi Agustí-Panareda와 연구 통계 부서 선임 경제학자 Daniel Samaan이 공동 저술했다. 두 저자는 노동 거버넌스가 오랫동안 국제 노동법과 ILO의 규범 체계 안에서 형성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AI 윤리 담론은 그런 축적된 노동 규범을 충분히 끌어오지 못했다. 245개라는 표본은 개별 기업의 선언 몇 개를 문제 삼는 수준을 넘어, AI 윤리 산업 자체가 어떤 언어를 주로 사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논점을 한국 상황에 대입하면, 문제는 결코 낯설지 않다. 필자 분석에 따르면, 채용 플랫폼·인사(HR) 솔루션·업무 생산성 도구가 확산하면서 기업은 사람의 판단을 보조한다는 명목으로 알고리즘을 일터에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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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 보고서가 특정 한국 기업 사례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보고서의 논점은 국내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AI가 낸 점수나 추천 결과가 면접 기회, 평가 등급, 교육 배치에 영향을 미칠 때 노동자는 그 기준을 설명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가장 큰 간극은 단체교섭권(collective bargaining right)에서 드러난다.

 

보고서는 기존 AI 윤리 프레임워크 안에 단체교섭권과 뚜렷하게 대응하는 윤리 원칙이 없다는 점을 가장 선명한 맹점으로 짚었다.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 삭제나 설명을 요구하는 것과 노동자 집단이 알고리즘 평가 체계의 변경을 협상 의제로 올리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전자는 이용자 권리의 언어에 가깝고, 후자는 일터의 권력 관계를 조정하는 제도적 권리다.

 

채용·평가 알고리즘이 일터 권리를 바꾸는 방식

 

이 차이는 정책 설계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AI 윤리를 개인 보호 원칙으로만 구성하면 기업은 개인정보 동의서와 차별 방지 문구를 갖추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노동 기준을 포함하면 AI 도입 전 협의, 평가 기준 공개, 이의 제기 절차, 집단 협상 가능성 같은 장치가 함께 논의된다. 보고서가 정부, 고용주, 노동자가 참여하는 삼자 협의(tripartite consultation)를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채용 단계에서 먼저 나타난다.

 

구직자는 이력서를 제출한 뒤 어떤 항목이 낮은 점수로 처리됐는지 모른 채 탈락 통보를 받을 수 있다. 기존 AI 윤리 문서가 공정성이라는 표현을 담고 있더라도, 실제 시스템이 어떤 데이터를 쓰고 어떤 추론 과정을 거쳤는지 설명하지 않으면 법적 유효성을 따지기 어렵다.

 

ILO 보고서는 AI가 고용, 성과 평가, 해고 결정에 정보를 제공할 경우 고용주가 데이터와 추론 과정의 투명성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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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평가에서도 같은 문제가 생긴다. 업무 관리 도구가 메신저 응답 시간, 문서 작성량, 고객 응대 기록 같은 데이터를 모아 생산성 지표를 만들 수 있다. 이때 개인은 자기 점수의 오류를 고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자 집단은 그 지표가 직무 특성을 왜곡하는지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알고리즘 편향을 줄이는 기술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 평가 방식 자체가 임금과 승진을 바꾸기 때문이다. 반론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AI 윤리에 국제 노동 기준까지 포함하면 규정이 무거워지고 도입 속도가 늦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은 법무와 인사 역량이 제한돼 세부 절차를 모두 갖추기 어렵다는 부담을 호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반론은 AI가 이미 사람의 기회를 배분하는 장치로 쓰일 때 발생하는 비용을 과소평가한다.

 

설명 불가능한 채용 탈락, 납득하기 어려운 평가, 집단적 이의 제기 부재가 누적되면 기업은 효율보다 큰 신뢰 비용을 치른다. 정책의 방향은 기술 금지가 아니라 노동 규칙의 재정렬이어야 한다.

 

AI 시스템을 쓰지 말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낮고, 모든 알고리즘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영업비밀과 충돌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고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 범위, 추론 과정 설명 수준, 이의 제기 절차, 노동자 대표와의 협의 조건을 법과 지침 안에 구체화하는 일이다.

 

ILO 보고서가 규범적 프레임워크와 감독 기관의 대화를 요구한 대목은 AI 윤리를 산업 자율 선언에만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담고 있다.

 

개인 보호를 넘어 집단적 권리로 가야 할 이유

 

AI가 일터에 들어오면 관리자의 판단은 사라지지 않고 데이터 기반 판단으로 포장된다. 문제는 포장된 판단이 더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동 기준 없는 AI 윤리는 오히려 권한의 소재를 흐릴 위험이 있다.

 

누가 기준을 정했는지, 누가 오류를 책임지는지, 노동자는 어떤 절차로 다툴 수 있는지 묻지 않으면 기술은 책임 회피의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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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책 논의도 이 지점을 피하기 어렵다.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공정성, AI 안전성은 이미 여러 영역에서 논의됐지만, 일터의 집단적 권리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리기 쉽다.

 

원천 보고서는 한국 법제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국제 노동 기준을 AI 윤리 문서와 연결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국내 제도 설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채용과 인사 평가에 AI를 쓰는 조직은 기술 도입 안내문보다 절차적 권리의 설계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AI 윤리의 다음 단계는 더 많은 원칙 문구를 쓰는 일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노동자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의 문장이다. 245개 가이드라인 중 20% 미만만 ILO나 그 기준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현재의 AI 윤리가 일터의 권력 구조를 충분히 보지 못했다는 경고다.

 

앞으로의 정책은 AI를 얼마나 빨리 도입하느냐보다, 그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판단할 때 누구에게 설명하고 누구와 협의할지부터 물어야 한다. ※ 이 칼럼은 ILO(국제노동기구)가 2026년 10월 발표한 보고서(공동 저자: Jordi Agustí-Panareda, Daniel Samaan)와 Human Resources Director의 2026년 10월 관련 보도를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FAQ

 

Q. 구직자는 AI 채용 과정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나

 

A. 현재 원천 보고서는 특정 기업의 채용 절차를 평가하지 않았고, 개별 구직자가 요구할 수 있는 항목도 국가별 법제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AI가 서류 심사나 면접 평가에 관여한다면 어떤 데이터가 평가에 쓰이는지, 사람이 최종 판단에 개입하는지, 이의 제기 절차가 있는지 확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업이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지원자는 채용 공고와 개인정보 처리 안내, 평가 안내 문서를 보관해 분쟁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ILO 보고서가 제시한 투명성 원칙에 따르면, 고용 결정에 AI가 개입할 경우 고용주는 데이터의 범위와 추론 과정을 설명할 의무를 져야 한다. 향후 정책은 채용 AI의 설명 의무와 오류 정정 절차를 더 구체적으로 다루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Q. AI 윤리에 노동 기준을 넣으면 기업 부담만 커지는 것 아닌가

 

A. 단기적으로는 기업이 점검해야 할 문서와 절차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고용 결정에 AI를 쓰면서 설명과 협의 구조를 갖추지 않으면 채용 공정성 논란, 평가 불복, 노사 갈등이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 ILO 보고서가 강조한 투명성은 알고리즘 전체 공개를 뜻하기보다, 노동자가 법적 유효성을 따질 수 있을 만큼 데이터와 추론 과정을 설명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삼자 협의(정부·고용주·노동자)를 통한 절차 설계는 기업이 단독으로 부담을 지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준을 나누는 구조다. 기업에는 속도보다 신뢰를 확보하는 설계가 장기적으로 더 낮은 비용의 선택이다.

 

Q. 단체교섭권이 AI 윤리와 왜 연결되나

 

A. 단체교섭권은 노동자가 집단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협상할 수 있는 권리다. AI가 평가 기준, 업무 배분, 해고 판단에 영향을 미치면 알고리즘은 사실상 노동조건을 정하는 도구가 된다. 개인의 동의나 개인정보 보호만으로는 이런 구조적 변화를 다루기 어렵다. ILO 보고서는 기존 AI 윤리 프레임워크에 단체교섭권에 대응하는 윤리 원칙이 명확히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맹점으로 지목했으며, AI 윤리가 정부·고용주·노동자가 참여하는 삼자 협의와 더 긴밀히 연결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집단 협상의 대상에서 배제하면, 노동자의 실질적 권리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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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10.28 05:26 수정 2026.10.28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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